[칼럼] 아! 강성훈
[칼럼] 아! 강성훈
  • 김대진
  • 승인 2019.05.1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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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PGA 투어 우승은 한편의 드라마다.
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에서 우승한 강성훈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감격에 겨워 있다. (사진 제공:Getty Images Stuart Franklin-스포티즌)
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에서 우승한 강성훈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감격에 겨워 있다. (사진 제공:Getty Images Stuart Franklin-스포티즌)

강성훈(32·CJ대한통운)이 13일(한국 시간) 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에서 우승한 것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TV 중계를 통해 경기를 지켜본 기자도 그가 우승하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그가 오랫동안 고생하다 마침내 뜻을 이뤘기 때문이다.
물론 힘들지 않고 우승한 선수가 어디 있을까만 강성훈의 경우는 좀 더 특별했다.
웬만한 선수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도 남을 오랜 시간을 그는 끈질기게 버텨왔다. 그가 미국 PGA 투어에 데뷔한 것이 2011년, 첫 우승을 하기까지 무려 8년이 지났다. 159번 도전 끝에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본 것이다.
강성훈은 미국 무대에 진출한 이후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PGA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데뷔한 이후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첫해 10회나 예선 탈락했고 이듬해엔 30개 대회에서 22회나 컷 탈락해 투어카드를 잃었다.

강성훈이 이번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티샷을 한 뒤 날아가는 공을 쳐다보고 있다.(사진 제공:Getty Images Stuart Frankiin-스포티즌)
강성훈이 이번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티샷을 한 뒤 날아가는 공을 쳐다보고 있다.(사진 제공:Getty Images Stuart Frankiin-스포티즌)

2003~2006년 골프 남자 국가대표를 지내고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딴 뒤 프로로 전향해 이듬해 KPGA 장려상, 2008년 KPGA 명출상(신인상)을 받고 전도양양했던 그로선 정말 깜깜한 밤에 폭풍우를 만난 격이었다.
그는 곧장 PGA 2부 투어인 웹닷컴으로 추락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2013년 그는 최경주에게 SOS를 보냈다. 그해 가을 한국에서 열리는 ‘KPGA 코리안투어 최경주 인비테이셔널’ 참가를 부탁했다. 최경주는 아끼던 후배를 위해 기꺼이 그를 초청했다.
강성훈은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뒤이어 열린 KPGA 코리안투어 제56회 한국오픈도 제패했다. 그 덕택에 그는 2013년 상금왕에 올랐다. 한해 4개 대회만 출전하고도 상금왕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2014년 KPGA 코리안투어 5개 대회에 참가해 모두 본선에 진출했고 2015년엔 국내 3개 대회에 참가해 모두 TOP10에 들었다. 미국 웹닷컴 투어에서도 상금 순위 22위로 PGA 투어 재입성에 성공했다.
강성훈은 2017년 PGA 투어 3개 대회에서 TOP 5 안에 드는 성과를 올렸다. 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도 출전해 4년만의 국내 우승을 노렸지만 연장전에서 황인춘에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8년 그는 국내 무대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PGA 투어 퀴큰론스 내셔널에서 최고 성적인 단독 3위에 올랐고 마침내 이번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강성훈은 키 172㎝로 골프선수로선 작은 편이다. 특히 미국 무대에선 더 그렇다. 그러나 그는 피나는 노력으로  드라이버샷 평균 300야드에 육박하는 장타력을 갖췄다. 이번 대회 그의 드라이버샷 볼 스피드는 173마일로 상위권이었다. 4라운드에서 챔피언조로 함께 경기한 맷 에브리와 스콧 피어시(이상 미국)보다 훨씬 빨랐다.
강성훈은 제주 출신으로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를 배웠다. 싱글 핸디캡 골퍼인 아버지(강희남. 69)를 따라 골프연습장에 따라 갔다가 골프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후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대회서 준우승했고 중고교 시절 국가대표를 지냈다. 그때 그는 미국으로 가 타이거 우즈를 가르친 행크 헤이니에게서 레슨을 받았다. 그는 국가대표 시절에도 부지런하기로 이름났다. 당시 그를 지도했던 한연희 전 감독은 “가장 일찍 일어나 가장 늦게 자는 선수가 강성훈이었다.”고 했다.
강성훈은 이번 대회 우승 후에 가진 인터뷰에서도 “행복하지만 간단하게 파티만 하겠다. 내일 오전 6시에 트레이너와 운동 일정이 잡혀 있다.”고 할만큼 철저하다.

강성훈이 우승을 확정 지은 뒤 환호하고 있다.(사진 제공: Getty Images Michael Reaves)
강성훈이 우승을 확정 지은 뒤 환호하고 있다.(사진 제공: Getty Images Michael Reaves)

그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우승 상금 142만2000달러(약 16억8800만달러)를 받았다. 내년에 열리는 ‘명인열전’ 마스터스 토너먼트와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출전권도 확보했다. 또 페덱스컵 포인트 500점을 받아 페덱스컵 랭킹 71위에서 21위로 50계단을 뛰어올랐다. 세계 랭킹도 138위에서 63계단 뛰어 오른 75위에 자리매김했다.
그보다 한참 후배인 김시우(24)가 PGA 투어에서만 2승을 올리고 임성재(21)가 지난 시즌 웹닷컴 투어 상금왕과 신인왕, 올해의 선수로 선정돼 각광을 받을 때도 그는 묵묵히 자신의 꿈을 키우며 자리를 지켰다.
강성훈은 최경주(49. 8승), 양용은(47. 2승), 배상문(33. 2승), 노승열(28. 1승), 김시우(24. 2승)에 이어 한국인으로선 여섯 번째로 PGA 투어 무대 정상에 올랐다.
그의 첫승은 늦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PGA 투어 8승을 올린 최경주도 첫 우승은 강성훈과 같은 32세 때였다. 그가 앞으로 최경주처럼 8승을 올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앞으로 그가 몇 승을 더 올릴 수 있을지는 오롯이 그의 몫이다. 지금처럼 끈질긴 노력과 집념으로 나아간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쉼 없이 전진하기를 바라면서 그에게 큰 영광이 있기를 빈다.

 김대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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